푸시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일화가 있습니다. 푸시킨은 러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힙니다. 아마 근대 러시아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푸가초프 반란을 다룬 역사소설 <대위의 딸>과 그 반란을 역사적으로 검토한 <푸가초프 이야기> 등도 썼습니다.
그 푸시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사랑하지 않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 인생이 고달플 때 마다 이 시를 입에 달고 산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추억을 꺼내 볼까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2)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 마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돌오리니.
마음은 항상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이니,
모든 것이 사라지면,
지난 일은 그리워지리라.
그 푸시킨의 일화입니다. 푸시킨이 모스크바 광장에서 한 소경걸인을 발견했습니다. 한겨울인데도 걸인은 얇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다가 사람들의 발소리가 나면 “한 푼 줍쇼,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면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의 모습은 가련했지만 모스크바에 그런 걸인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그에게 특별히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푸시킨만은 줄곧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다가 걸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한 형편이라 그대에게 줄 돈은 없소. 대신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소.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요.” 푸시킨은 종이 한 장에 글씨를 써서 거지에게 주고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푸시킨은 친구와 함께 다시 모스크바 광장에 나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나리,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제게 글씨를 써준 분이 맞지요? 하느님이 도와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셨나 봅니다. 그 종이를 붙였더니 그 날부터 깡통에 많은 돈이 쌓였답니다.”
푸시킨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친구와 그 소경걸인이 물었습니다. “그날 써준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요?” “별거 아닙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 라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걸인을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처참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봄을 기다리는 이 사람은 도와줄 필요가 있다.’
어떻습니까? 비록 우리가 기억해 내지 못하여도 우리는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넘어졌고,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우리는 물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처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방망이에 공이 잘 맞던가요? 홈런을 제일 잘 치는 강타자들도 자주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합니다.
실패를 걱정하시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도조차 하지 않아 기회를 놓칠 것에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젊어서 셀 수 없이 실패를 했습니다. 제 능력이 모자라 당한 일이겠지만,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 번 번히 실패를 거듭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 15권에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베살리의 원숭이 연못 옆 중각강당에 있을 때에 아난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난다야, 큰 바다에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이 거북이는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았는데, 그때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면 잠시 거기에 목을 넣고 쉰다.
그러나 판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눈먼 거북이가 과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다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래도 눈먼 거북이는 넓은 바다를 떠다니다 보면 서로 어긋나더라도 혹시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이 육도윤회의 과정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저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나기 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저 중생들은 선(善)을 행하지 않고 서로서로 죽이거나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헤쳐서 한량없는 악업을 짓기 때문이니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렵게 인간으로 태어나 역겁난우(歷劫難遇) 덕화만발을 만난 우리입니다.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겨울이 지나가고 봄도 곧 오지 않을 런지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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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시킨(1799~1837)이 쓴 시의 첫 구절이다. 7연으로 번역되는 경우, 뒤에서 소개할 1, 2연의 내용이 나머지 연들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푸시킨은 평생토록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고 이 시도 그 중 한 명에게 보낸 시라고 한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유를 향한 갈구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이 시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부터 애송되어 1970년대 정도까지는 상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이 회자되었다. 남루한 이발소의 액자에나 젊은이들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 단골로 적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찾고 있다. 네이버 검색어 창에 '삶' 자를 치면 자동완성 되는 검색어 가운데 두 번째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다. 세 번째인 '삶'보다도 앞선다.
이 시구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삶이 나를 속여 슬프고 화가 난다'는 경험을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고달플수록 이 시구는 더 다가온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이 '삶은 달걀 칼로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이 검색어가 네이버 검색어 창에 '삶'을 쳤을 때 자동완성되는 첫 번째 검색어다).
그런데 삶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는가? 실화는 너무 가슴 아프니 소설과 영화의 예를 들어보자. 모파상의 <목걸이>에서 주인공은 친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대신 비슷한 것을 사다 준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이 꿈도 젊음도 다 흘려보냈을 때 삶은 속삭인다.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겨우 500프랑 정도밖에 하지 않는."
영화 <파이란>에서 주위의 괄시만 받는 3류 건달 주인공은 얼굴도 모르고 위장결혼해 준 여인이 얼마나 착하고 예뻤는지, 그리고 자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나중에야 알고 대성통곡한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송장으로 나타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의 인생에서 유일했던 행복의 기회가 바로 문 앞에까지 왔다가 가버렸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그는 이 사실을 알아야 했다.
푸시킨의 이 시구는 이런 삶의 진실을 드러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처방도 내리고 있다. 슬프고 화나더라도 슬퍼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참고 견디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이 충고는 막 들었을 때 틀림없이 옳은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따져보려고도 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슬픈데도 슬퍼하지 않고 화가 나도 화내지 않으려면 우리는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요샛말로 이것은 '감정노동'인데 감정노동에는 안 좋은 점이 있다. 백화점 점원과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무례한 손님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데 이때 엄청난 스트레스와 분노가 가슴속에 쌓인다. 이런 부작용이 삶에 대한 감정노동에서도 생길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 감정노동이 지배세력에 의해 은밀하게 조장되곤 했다는 점이다. 지배자들은 지배받는 자들이 그들의 피폐한 삶에 대해 슬픔도 분노도 표하지 않는 것이 편하고 좋았던 것이다. 그러니 푸시킨의 충고가 과연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삶에 속아 슬프고 화나는데 거기에 더해 안 해도 되는 감정노동까지 하게 된다면 이는 억울한 일이다.
푸시킨 자신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푸시킨이 말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희망'이다. 미래에는 즐거운 날이 오고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되니 참고 견디라는 것이다. 이렇게 희망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인생사에서 상황 반전은 흔하게 일어나고 인간 마음도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울병을 앓는 사람은 당시에는 그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이 느끼지만 몇 개월 안에 대개 자연치유된다고 한다.
하지만 삶에서 절대로 확실한 것은 죽음밖에 없다. 이것은 삶에서의 모든 희망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가능성과 확률만을 약속할 뿐이며 보장은 하지 않는다. 이 명백한 사실을 외면할 때 희망은 맹목이 된다. 그런 희망은 우리를 큰 바람에는 쉽게 부러져 버리는 뻣뻣한 나무처럼 되게 한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나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중에 곧 석방될 수 있다고 낙관한 사람들이 먼저 죽어나간다. 그들은 조만간 도래할 석방을 '생생하게 꿈꾼' 만큼 그 희망이 계속 좌절되었을 때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얼마 전 발생한 '행복 전도사'의 불행한 자살도 낙관이나 희망만으로는 이 세상에 우뚝 버티고 설 힘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러니 푸시킨은 절반의 이유만을 제시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 때 죽어간 우리 조상들처럼 죽는 날까지 질곡의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누구든 그런 처지에 놓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삶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지 않아야 한다면 희망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떠올려볼 만한 것이 "삶이 그대를 속여도"라는 말에는 '삶은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우리를 속인 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삶은 그런 것일까?
인간의 기본권이나 행복권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분명하게 성립하는 실체이다. 하지만 자연이나 우주에 대해서도 인간이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지는 알기 힘들다. 어느 야산의 둥지 속 새끼 새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자연은 마땅히 충분한 먹이와 보호막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에 대해서만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자연과 우연도 함께 버무려 빚는 것이 삶이라 삶은 본래 아주 좋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삶에 대해 우리는 그중 특정한 가능성을 선택해서 그것이 현실이 되길 기대도 하고 또 현실이 되도록 노력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삶이 이와 벗어난 것일 때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삶이 우리를 속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속인 것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 이렇게 기대를 거는 것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삶이 그 기대와는 많이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다하더라도 우리 자신에 대해 슬퍼하고 화내기보다는 위로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해석할 때 푸시킨의 충고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된다.
푸시킨은 당시 러시아 사교계의 '꽃'이었던 그의 아내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던 남자와 결투를 벌이다 38세의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다.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겨우 일어난 푸시킨은 소리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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