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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배제의 문제와 약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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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준 (철학박사)
약자를 배제하는 사회
백남기 씨 사망 이후 <뉴데일리(Newdaily)>라는 우파 성향의 인터넷 매체에 한 여대생이 ‘백남기 사망–지긋지긋한 사망유희’(2016년 9월26일)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기사의 요지는 유족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저항이 실상 고인의 죽음을 무기 삼은 ‘시체팔이’, 즉 부당한 선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SNS상에는 여대생의 저 기사를 성토하는 게시물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예를 들어, 언론인으로 알려진 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기사를 작성한 여대생을 명백하게 ‘조리돌림’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기사를 링크한 게시물을 작성했고, 게시글 댓글란은 온갖 욕설로 뒤덮였다. ~년으로 끝나는 욕들, 이를테면, 썅x, 못된x, 어린x, 썩을x, 망할x, 개같은 x등이 쏟아져 나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눈에 띈 것은 미친x이었다. 그 외에도 패륜 발언, 강간 관련 발언, 외모 관련 발언, 학교 관련 발언 등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수많은 욕설들은 의미론적으로 약자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하나의 욕설은 어떻게 욕설로서 인식될 수 있는가? 한 단어가 욕설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발언자와 청취자 간에 어떤 관습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정신병자’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단어이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지칭하는 욕으로 받아들여지는 관습을 지닌 사회에서 이 단어는 욕으로 사용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병신, 장애인, 정신병자, 미친x, 못생긴 x, 비정규직이나 할 x 등의 표현을 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해당 단어들에 상응하는 약자들의 사회적 위치를 치욕적인 위치라고 인식하는 관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댓글들 속의 저 거친 어휘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 참담한 댓글들은 이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해 우리가 평소에 품고 있는 생각들이, 즉 여성 혐오, 정신장애인 혐오, 학벌 비하, 외모 비하, 비정규직 비하 등이 분노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결과는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약자들을 배제하는 사회이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나와 다른 입장을 주장하는 표현에 대한 반응이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약자들을 배제하는 표현의 자유를 우리가 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고인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비하면 약자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는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나와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이에 대한 분노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역설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고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분노가 향하고 있던 대상은 바로 공권력이 행한 배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배제 역시 이런 식의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의 구별을 전제로 하는 배제였던 것이다.
구조적 배제의 현재 그리고 미래
불법과 합법의 구분을 넘어선 시위라는 저항 앞에서 경찰 행정 권력은 그것이 지녀야만 할 시민 보호의 책임으로부터 고인을 배제하였다. 왜 배제하였을까? 집회에 참여한 시민의 안전을 사소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사소하게 여겨질 때에는 반드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법질서였을까? 하지만 저항으로서의 시위는 법질서에 의해 제한받을 수 없는 초법적 행위라고 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시위자들은 법체계 자체의 근간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묻는 제헌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라는 공간 안에서 시위자들은 제헌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의 불법과 합법의 구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왜 경찰 행정 권력은 고인을 배제하였는가? 그것은 그의 안전이 더 중요한 어떤 것에 비해 사소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탓이다. 결국 경찰 행정 권력은 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여한 시민의 안전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가운데 배제했던 것이다. 그리고 배제가 물대포라는 물리력을 통해서 행해지던 바로 그 순간 고인은 이미 한 명의 약자였다. 배제되는 것은 언제나 ‘더 중요한 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 즉 약자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배제가 단지 현정권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역대 모든 정권에서도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배제’라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 배제의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서, 배제의 문제와 관련해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어떤 근원적인 한계에 대해서, 자본주의 안에 머무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는 약자들의 배제라는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배제에 반대하면서도 다시금 누군가를 배제하는 분노가 저항으로 이어지게 될 때, 이러한 저항이 가져오게 될 현실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권 교체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게 다일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더 이상 키우지 않으려는 이들이 가장 큰 목소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즉 현정권에 대해 분노하되 그 분노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선거를 위해 보존하려는 이들이 많아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인 약자들의 배제는 고스란히 보존될 것이고, 또 그렇게 고인의 죽음을 초래한 공권력의 배제 또한 고스란히 보존될 것이며, 또 바로 그렇게 약자들은 구조적인 배제 속에서 계속해서 사라져가리라.
외부 필진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필자 소개장의준 (철학박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에서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살아남기: 주체의 삶과는 다르게 또는 현존재의 죽음 저편)」이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최우수 등급(félicitations du jury)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레비나스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L’origine perdue et l’événement chez Lévinas」,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 「La passivitédu temps et le rapport à l’autre chez Lévinas」,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으로부터 빠져나가기.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적 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가 있고, 저서로는 『좌파는 어디 있었는가? 메르스와 탈–이데올로기적 좌파의 가능성』, 공저로는 『종교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종교』,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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