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한 왕 멍한 신하
삼국유사(三國遺事)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 조에 대한 이어령(李御寧) 선생의 해석은 압권이다. 이 조는 처용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록으로만 널리 알려져 있다. 울산(蔚山) 바닷가에서 만나는 헌강왕(憲康王)과 동해 용. 포구(浦口)를 가득 덮은 안개를 물리친 용에게 왕은 절을 지어 보답하는데, 용은 막내아들 처용을 왕에게 달려 보낸다. 경주(慶州)에 온 처용이 겪는 이런저런 일 가운데 절정(絶頂)은 처용의 아내가 전염병(傳染病)의 신으로 표현된 외간 남자와 벌인 불륜(不倫)이다. 처용이 밤늦게 '들어가 자리 보니/가랑이가 넷'이라는 충격적인 대목.
그러나 처용 이야기는 '처용랑 망해사' 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어령 선생의 지적은 여기부터 시작한다. 바야흐로 신라 말기(新羅末期), 이 조는 헌강왕이 나라의 안위(安危)를 걱정해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다니며, 산천의 신에게 지혜(智慧)를 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네 가지 사건으로 누벼진다. 처용 이야기는 동쪽으로 갔을 때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야기 전체를 보고 낱낱을 해석(解釋)해야 본뜻을 바로 이해(理解)한다는 것이 선생의 주장(主張)이었다. 마땅히 옳은 말씀이다.
물론, 처용이 단연 튀기는 한다. 그러나 남쪽에서 벌어진 사건(事件)도 의미 면에선 못지않다. "왕이 포석정(鮑石亭)에 갔을 때이다.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는데, 곁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오직 왕만이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앞에 나서서 춤추니, 왕이 손수 따라 춤을 추며 형상(形像)으로 보여주었다"는 대목이다. 왕의 춤은 환락(歡樂)이 아니었다. 산신(山神)은 나라가 망(亡)하리라는 것을 알고 춤을 추어 경고(警告)한 것이었다. 왕이 그것을 따라 했는데, 신하들은 흥겨워 추는 춤인 줄 알고, '상서(祥瑞)로운 조짐이 나타났다'며 탐락(耽樂)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나라가 망하는 과정, 실로 처용 이야기도 본질(本質)은 거기 있었다.
위기를 직감(直感)한 왕은 널리 지혜를 구하러 다닌다. 헌강왕이 현군(賢君)은 아니었으되,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법. 왕의 눈으로 보니 나라 꼴이 심상치 않았겠다. 그래서 동해 용과 남산의 신을 비롯해, 서쪽으로 가서 지백급간(地伯級干)을, 북쪽에서 금강(金剛)의 신을 만났다. 이들 모두 신라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그러나 왕 혼자 용쓴들 신하(臣下)가 알아주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왕이 춤을 추자 신하들은 그저 신나게 따라 할 뿐이다. 이어령 선생의 지적(指摘)은 여기서 본뜻을 찾아야 할 듯하다. 곧 춤의 메시지다. 왕의 눈에만 보인 신들의 춤은 위기 극복의 해결책(解決策)을 담고 있을 터이다. 물론, 구체적(具體的)으로 해석하지 못한 것은 왕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냥 따라 추며 신하들에게 보여주지만, 진심(眞心) 없는 답은 엉뚱한 데로 흐르고 말았다. 위는 둔(鈍)하고 아래는 멍할 뿐이면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도 날리고 만다. 이것이 어찌 신라만의 일이랴. |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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