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반응형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걸작 ‘복수는 나의 것’. 피터팬픽쳐스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1] 나쁜 놈은 태생부터 나쁜 놈일까요? 아니면 세상에 의해 나쁜 놈으로 만들어지는 걸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영화가 최근 국내 극장에 정말 오랜만에 걸린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걸작 ‘복수는 나의 것’(1979년)이에요. 살다 살다 이런 미친놈은 처음 봐요. 연쇄살인범 ‘에노키즈’의 살인 행각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작품은 초반부터 충격이에요. 직장 동료를 망치로 때려죽인 그는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려 손에다 오줌을 싸요. 젖은 손을 대충 닦고 고개를 드니 사과 나뭇가지에 열매들이 매달려 있네요. 하나를 툭 떼어내 베어 물고는 이내 퉤 뱉으며 지껄여요. “선물로 줄 맛이 안 되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몸도 마음도 다 주는 하숙집 여주인마저 목 졸라 죽여요. 이유요? 없어요. 거부할 수 없는 살인 욕망에 이끌릴 뿐. 영화는 어린 시절의 에노키즈를 플래시백(회상 장면)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사회를 향해 비틀린 복수심을 품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는 체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정도의 이유로 괴물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투로 나아가요. 악마는 길러지지 않는다. 타고난다. 단지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국가 권력과 사회가 괴물의 악마성을 피로 꽃피운다. 이것이 이마무라 쇼헤이의 생각이죠.

놀랍게도, 우리로 치면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에, 프랑스 거장 장 르누아르 감독은 ‘야수 인간’을 통해 인간의 동물성을 이미 영화적으로 탐구했어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장 가뱅이 철도기관사로 나오는 이 작품에서 그는 직장 상사의 아내인 ‘세브린’의 정부(情夫)가 돼요. 사랑에 눈먼 세브린은 가뱅에게 남편을 죽여 달라 사주하고, 소심한 가뱅은 남편을 죽이지 못해요. 그런데, 그다음 펼쳐지는 미친 장면이 뭔지 아세요? 갑자기 가뱅이 세브린을 목 졸라 죽여요. 왜냐고요? 영혼 속에 꾹꾹 눌려 있던 살인 본능이 활화산처럼 폭발해서죠. 가뱅은 결국 달리는 기차에서 몸을 던져요. 내 안의 괴물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 죽는 일뿐이니까요.

[2] 이와는 반대로, 지난달 국내 개봉한 영화 ‘위키드’는 악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집단과 사회에 의해 제조된다는 메시지를 품었어요. 판타지 소설이자 영화인 ‘오즈의 마법사’의 외전(外傳) 격인 이 영화는 기괴한 고깔모자를 쓴 채 지팡이를 타고 날아다니는 무시무시한 ‘서쪽 마녀’의 탄생기죠. 중요한 건 제목이에요. 왜 ‘마녀(Witch)’나 ‘마법사(Wizard)’ 같은 명사가 아니라 ‘사악한(Wicked)’이라는 형용사가 제목인지만 살펴봐도, 이 영화가 선악 간 대결이 아니라 ‘악’이 탄생하는 사연에 주목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죠. 평범하고 무기력한 다수가 스스로 보호하고 구분 짓기 위해 나와 다른 유능한 존재를 향해 붙이는 주홍 글씨가 ‘악’이니까요. 악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3] 그럼, 모성(母性)은 유전자에 새겨진 걸까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걸까요? ‘국민 엄마’로 통하는 배우 김혜자에게 미친 모성을 부여함으로써 모성은 식욕, 성욕과 같은 동물적 본능이라고 주장한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달리, 올 10월 국내 개봉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은 모성이 결코 프로그래밍이 아니라고 웅변해요. 야생에 불시착한 도우미 로봇 ‘로즈’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보호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이 감동적인 작품에서 주목할 건 명칭이에요. 모성이 전혀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로봇은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 기러기를 거두고 보호하고 키워내면서 모성을 스스로 획득하고, 기계 회로엔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에 영원처럼 저장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기 기러기는 어미 같은 존재인 로봇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결코 ‘엄마’라 부르지 않고 시종 ‘로즈’라는 이름으로 부르죠. ‘엄마’란 단어가 엄마를 엄마이게 하는 게 아니다. 엄마 같지 않은 엄마도 있고, 엄마가 아니지만 엄마보다 엄마다운 존재도 있다. 모성은 엄마를 초월한다. 모성은 본성이 아닌 의지다. 이런 탁월한 주장이에요. “우리에겐 생존의 본능이 있다. 하지만 때론 프로그래밍 된 자신의 본성을 넘어야 한다.” 멋지죠? 이 영화 속 명대사예요. 본성을 뛰어넘는 모성 말이죠.

[4] 아, 성정(性情)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갈수록 헷갈려요. 마더 테레사의 선의지는 타고난 걸까요, 절박한 경험과 의지의 결과물일까요? 미친놈은 미친놈으로 태어나는 걸까요, 세상에 의해 미친놈으로 길러지는 걸까요, 아니면 원래 미친놈이 때마침 미친 세상을 만나 가일층 미친 짓에 매진하게 되는 걸까요? 이해 불가한 일들이 세상엔 점점 늘고 있어요.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자동차 뒤창에 붙인 채 난폭운전을 하는 놈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김치찌개만 30년’이라는 간판을 붙여놓고는 그 밑에 ‘비빔밥도 있어요’라고 써놓은 음식점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제정신으론 살아가기 힘들어요. 정말.

[이승재의 무비홀릭]악인은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이승재의 무비홀릭]악인은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1] 나쁜 놈은 태생부터 나쁜 놈일까요? 아니면 세상에 의해 나쁜 놈으로 만들어지는 걸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영화가 최근 국내 극장에 정말 오랜만에 걸린 일본 이마…

www.donga.com

오픈AI ‘소라’, 몇마디면 20초짜리 동영상 ‘뚝딱’

 

오픈AI ‘소라’, 몇마디면 20초짜리 동영상 ‘뚝딱’

오픈AI가 10일(현지시간) 동영상 생성 인공지능(AI) ‘소라(Sora)’를 영국과 유럽연합(EU)을 제외한 전세계 국가에 공식 출시한다. 한국 역시 1차 출시국에 포함됐다. …

www.donga.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