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북중앙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작-대장간/한석산
사진<뉴-폼조형창작집단>님의 카페에서
대장간 / 한석산
속살까지 죄 들어낸 화덕 안 잉걸불에
안으로 결 삭으며 붉게 익은 쇳조각을
담금질, 담금질한다, 뿌지직 노을이 탄다
시우쇠 무딘 정수리 쌍메로 두들겨서
숫돌에 양날을 세워 殺意가 번득이는
갓 벼린 조선낫 들어 검은 밤을 가른다
벌건 불꽃 입에 물고 쇠붙이 기다리는
대장간 언저리서 곁불 쬐던 한 소년이
얼룩진 사진 속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다
[당선 소감]
떨린다. 다시 손 떨리는 긴장감을 안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너무나도 먼 길, 피 말리는 시조의 세계를 향해 외롭고 괴로운 여행길, 그 험한 가풀막 길을 기어올랐나 보다.
3장 6구 12음보의 율격을 갖추어야 하는 시조문학. 시조 한 수는 45자 안팎의 글자 수로 이루어진다. 작다고 보면 작고, 짧다고 보면 형편없이 짧은 그 ‘그릇’ 속에는 세상 모든 이치와 우주의 섭리까지도 담아내야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문학은 독특한 형식미학을 갖춘 정형시이다. 그러므로 율격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그 안에 사상을 담아내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득음(得音)의 경지가 어떤 것인가. 시조문학이 지닌 오묘한 묘리(妙理)를 터득하는데 얼마나 많은 방황을 계속했던가.
부족한 나의 시 끈을 놓지 않도록 흙을 북돋아 주신 경기대 문창과 윤금초 교수님, 아직 모자라는 글을 어여삐 여기시어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가파르고 머나먼 길 늘 함께 해온 문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내 선녀, 큰 아들 대섭, 새 애기 윤수, 딸 은선, 막내 건섭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함께 응모하셨던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끝으로 전북중앙신문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약력]
*1949년 충남 태안 출생. 분당거주 한의원 원장 30년
*2003년 현대시문학 시 부문 신인상 당선
*2004년 7월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장원
*사회교육원. EBS. 케이블TV 등에서 대체의학 강의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심사평]
고려말부터 오랜 세월을 이어온 시조는 여느 시와는 달리 3장 6구 12음보의 형식을 갖춘 한국 고유의 전통시이다. 또한 고시조와는 달리 음악으로부터 분리된 현대시조는 시조의 형식미와 함께 현대 감각에 걸 맞는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표출된 이미지를 일관되게 끌고 가는 호흡도 중요하지만 비유와 상징, 절제되고 함축된 시어를 제자리에 앉히는 솜씨가 있는지 즉 시의 완성도를 가늠해보아야 한다.
심사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응모자의 이름과 주소 등 인적사항이 삭제된 응모작품 200여편 중에서 읽고 또 읽으면서 눈에 띈 작품 20편을 골라내고 다시 10편으로 압축한 후 각 작품을 낭송하면서 다시 검토한 결과, 한석산의 ‘대장간', 이태호의‘소록도', 정행련의‘가자미 낚기', 이종대의‘모둠발로 서는 미륵사지탑’등 4편을 최종심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고심 끝에 작품의 순위를 정하고 신문사 담당기자에게 결격사유 유무를 확인케 한 후 한석산의 ‘대장간'을 당선작품으로 합의했다.
한석산의‘대장간'은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와 실존에 대한 연민이 있으며, 그 삶의 정서를 예술적인 안목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대장간은 쇠를 다루는 곳이지만 인생 또한 계속된 담금질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곁불 쬐던 한 소년이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풀무질하는 모습을 지난날 자신의 초상으로 떠올리면서 무리 없이 이끌어간 힘이 돋보였고 적절한 시어의 조탁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태호와 이종대의 작품은 고르고 안정적이었으나 신선한 면이 부족했고, 정행련의 작품은 거칠지만 이끌어 가는 힘이 좋았으나 생경한 시어의 남용이 거슬렸다. 앞에 거명한 네 사람의 작품 모두 수준급이었으나 신춘문예의 특성상 한석산의 ‘대장간'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심사위원에게 넘겨진 작품들은 몇 편을 빼고는 정형시로서 시조의 기본에 충실하였으며 작품 수준도 고른 분포를 보였고, 시조 창작에 오랜 수련을 거친 각자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아 고무되었다. 전북중앙신문의 신춘문예 공모야말로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장에서 시조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당선자는 앞으로 자만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여 시조단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정순량 우석대 대학원장, 시조시인·양점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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