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매력점과 쉐퍼의 상징
만년필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보통 만년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펜촉을 가장 떠올리겠지만, 펜촉은 만년필 매력의 시작입니다. 그 밖에 은(銀)이나 금(金) 그리고 흑단(黑檀)과 스네이크 우드 등 귀금속과 귀한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도 특별한 매력이지만, 만년필 매력의 끝은 몽블랑의 하얀 별, 파커의 화살 같은 상징(象徵)입니다.
상징의 시작 역시 실용적인 만년필 시대를 연 워터맨이었습니다. 파커와 쉐퍼 등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시작되는 만년필의 황금기(1920년~1940년)가 열리기 전까지 초창기 워터맨은 정말 놀라운 회사였습니다. 모세관현상을 이용하여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써지는, 즉(卽)필기와 남아있는 한 방울까지 쓸 수 있는 완(完)필기를 실현했을 뿐만 아니라, 자사(自社) 펜촉 시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클립도 맨 처음 장착하였습니다. 그리고 1902년 지구의(地球儀) 모양의 상징까지 어떤 면으로 봐도 만년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워터맨의 지구의 상징 (동그라미 안에 IDEAL)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다고 워터맨의 독주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새롭게 무기를 장착한 회사들의 도전을 받아 그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1913년 만년필 사업을 시작한 쉐퍼였습니다. 쉐퍼는 매우 영리한 회사였습니다.
그 당시 최신의 유행을 면밀히 분석하여 더하거나 뺄 필요 없는 간결한 만년필을 들고나왔습니다. 클립을 달았고, 돌려서 잠그는 뚜껑, 혁신적인 잉크 충전 방식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7년에 자사 펜촉까지 장착한 다음 1920년엔 평생 보증까지 하여, 1914년 전미(全美) 점유율 4퍼센트에서, 1923년엔 13퍼센트로 점유율을 늘리기도 하였습니다.
쉐퍼의 화이트 닷(1920년대)
그렇지만 이 영리한 신생 회사 쉐퍼에 단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쉐퍼하면 딱 떠오르는 상징이 없었습니다. 1924년 때는 무르익었습니다. 평생 보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쉐퍼는 아니었습니다. 비장(祕藏)의 무기를 두 개를 준비했고 하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년필을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징이었습니다. 쉐퍼는 플라스틱으로 만년필을 만들고 뭔가 허전한 뚜껑의 상단에 하얀 점(White Dot)을 찍어 만년필을 완성합니다. 쉐퍼의 상징이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1925년 전미 점유율은 20퍼센트에 도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도 점(點)으로 성공한 배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뷰티 마크(Beauty Mark) 또는 뷰티 스팟(Beauty spot)으로 불리는 입가에 매력점이 있는 마릴린 먼로입니다. 마릴린 먼로(1926년~1962)는 쉐퍼가 점을 찍고 한창 주가를 날리고 있을 때인 1926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는데, 제 2차 세계대전 중 전쟁 물자 생산 공장에서 일하다가 한 사진작가를 만나 모델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델을 하면서 컬럼비아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점차 영화 쪽으로 발을 넓혔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 <<나이아가라>>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출현에 이어 최고의 흥행작인 1955년 <<7년 만의 외출>>로 그 인기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마릴린 몬로(1953년)-출처 위키백과
그런데 공교롭게도 먼로의 초창기 사진에는 이 매력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초창기엔 결점으로 생각하여 화장으로 가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충고일 수도 있고 수도 없이 화장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 입가의 점을 더 이상 가리지 않았고, 이것은 쉐퍼의 하얀 점이 뭔가 허전했던 쉐퍼를 완성했던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은 참 신기합니다. 100퍼센트가 되어야 비로소 눈길도 주고 성공도 주기 때문입니다.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혹시 노력이 아주 조금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요? 거의 다 왔는데 말이죠.
마릴린 먼로의 매력점과 쉐퍼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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