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유석재 기자
‘논어(論語)’를 읽다 보면 가끔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지극히 성인군자적인 자세를 취하던 공자(孔子)마저도 가끔은 온몸을 휘감아 눈에서 휘황한 광채를 내뿜을 정도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말을 더듬은 흔적까지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공야장(公冶長)편의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或曰: 雍也, 仁而不佞(人변, 二밑에女).
혹왈: 옹야, 인이불녕.
[어떤 사람이 “옹(雍)은 어질지만 말재주가 없다”고 말했다.]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자왈: 언용녕, 어인이구급, 누증어인, 부지기인, 언용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약삭빠른 구변(口辯)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을 뿐이니,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이 문장에서 공자는 분명히 흥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 앞과 뒤에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라는 부분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주주(朱註)는 물론 아주 점잖게 해석합니다. “이 말을 두 번 말씀하신 것은 깊이 깨우치기 위해서다[所以深曉之].” 하지만 이걸 그 당시 공자께서 말씀하신 구어체 말투 그대로 되살리면 대개 이런 말씀이 되지는 않을까요.
“뭐야... 말재주라고? 이런 세상에, 마... 말재주를 도대체 어디에다 쓴다는 거야 이 녀석아? 말재주란 건 말이야 약삭빠른 그 입 가지고 남의 말을 막아서 번번이 다른 사람한테 미움 받아 왕따 당하기 십상이야 이눔아... 참 아까 너 옹이보고 뭐 어질다 어떻다 했었지? 옹, 그, 그놈의 녀석이 도대체 어진지 안 어진지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말야...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하여튼 마! 말재주를 도대체 어디에 쓴다는 거냔 말야.”
분명히 화제의 비약과 중언부언(重言復言)이 중첩되는 이 문장에서 공자는 흥분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는 더욱 부각(浮刻)돼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곤 합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옹(雍)은 누구였으며, 공자는 왜 이렇게 분노했던 것일까요?
부록: 殿上十位(전상십위)
문묘(文廟)의 대성전(大成殿) 안에 모신 공자(孔子)의 제자 열 사람의 신위. 곧 민손(閔損)·염옹(冉雍)·단목사(端木賜)·중유(仲由)·복상(卜商)·염경(冉耕)·재여(宰予)·염구(冉求)·언언(言偃)·전손사(顓孫師)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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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란 ‘염옹(冉雍)’이란 인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의 제자인 염옹의 자(字)는 중궁(仲弓)이었다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기록돼 있습니다. 벼슬했다는 기록은 고작 노(魯)나라의 세족이었던 계씨(季氏)의 재(宰) 정도였는데, 매우 소탈하고 과묵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석같은 제자에 대해서 공자가 언급한 칭찬은 그야말로 ‘논어’ 전편을 통틀어서도 너무나 튀는 내용이어서 독자들을 당혹하게 합니다.
“옹은 남면(南面)하게 할 만하다.[雍也, 可使南面]”
아, 이게 웬일입니까?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제6장 ‘옹야’장의 첫머리인데, ‘남면(南面)’이란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남쪽으로 얼굴을 향한다.’ 이 말은 즉 옥좌(玉座)에 앉는다, 그러니까 임금 노릇을 한다는 뜻입니다. 자금성(紫禁城)이고 경복궁(景福宮)이고 들어가는 문은 남쪽이)죠? 오늘날 궁전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은 정남향에서 정북쪽을 향해 갑니다.
여러 개 문을 지나면 대전이 나옵니다. 근정전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임금이 앉아있던 옥좌가 보입니다. 거기 앉는 사람은 정남향을 보면서 앉아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앉아있는 이 사람을 기준으로 ‘좌’는 동쪽이고 ‘우’는 서쪽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는 경상도(慶尙道) 동쪽, ‘경상우수사’는 경상도 서쪽이 관할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묵하고도 그다지 신분이 높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제자가 ‘남면’을 한다고요?
혹자는 이 ‘남면’이라는 의미는 대부(大夫)나 제후 정도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라며, 고작 계씨네 집사 정도의 벼슬에 머물던 애제자(愛弟子)를 안타까워하는 공자의 마음을 표출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남면’이야말로 ‘천자’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염옹 정도의 수양을 갖춘 인물이라면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王)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이미 임금이란 자리는 대대로 내려오던 세습적 신분(世襲的身分)에 의해서가 아닌, 덕성을 갖춘 철인군주(哲人君主)에 합당한 사람이 그 자리를 맡을 수도 있다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고방식이 은연중 드러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공자를 ‘봉건귀족(封建貴族의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한 인물’ 정도로 평가했던 문혁시기 중국 학자들은 끝내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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