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머리말)
머리말
(김학철 1988년 5월)
나의 한 졸저(拙着)에 다음과 같은 단락이 있다.
나는 중학생시절에 난생처음 공기총으로 참새 한마리를 쏴떨궜는데 그 할딱할딱하다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량심의 가책을 받았다. 량심의 가책을 받은 나머지 소나무밑에다 구뎅이를 파고 내 손에 죽은 그 참새를 고이 묻어준 다음 공기총으로 조총(掉铳)을 쏘고 <<영원히 다시 이런 살생을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낚시질을 하다가도 이와 비슷한 일에 부닥쳤다. 처음으로 낚아올린 빙어(冰鱼)새끼가 파드닥거리며 모지름을 쓰다가 죽어가는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시는 낚시대에 손을 대지 않은것이다,
이러한 내가 자란 뒤에 산 사람을 겨냥하고 총을 쏘기에 이러렀으니 -그도 기를 써가며 쏘기에 이르렀으나- 내 일생은 참으로 들쭉날쭉이랄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역시 누가 닭의 목을 비트는것만 봐도 끔찍해서 얼른 고개를 외치고 도망질을 쳐버린다.
그러니까 이 <<자서전>>은 독립군출신인 한 지방작가의 우글쭈글한 <<자화상>>쯤 되잖을가싶다.
......
나의 소년시절에는 우리 원산에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내가 12살 되던 해에 처음 들어왔다)어느 집에서나 다 석유람프를 썼었다. 그러므로 삼노끈으로 목을 동여맨 빈 맥주병을 들고 구멍가게에 석유를 사러 가는 심부름은 대개 우리또래 아이들의 소임이였다. 헌데 심부름을 시킬적마다 어머니는 내게다 당부를 하시는것이였다.
<<석교다리집엘랑 가지 마라. 그 집 석유는 물을 타서 못쓰겠다.>>
자연 나도 석교다리집을 괘씸히 여기게 된지라 꼭 50메터나 더 먼 꼽추네 집에 가 사오군 했다.
몇해후 <<물리>>니 <<화학>>이니 하는것들을 배우면서 나는 비로소 제 잘못을 깨닫고(어머니의 잘못도 대신 깨닫고) 뒤늦게나마 뉘우쳤다.
-이거 내가 석교다리집에 미안한짓을 했구나.
이로서도 대강 집작을 할 수가 있겠듯이, 나의 인생 력정은 거의다 뒤죽박죽-착오투성이.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하긴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 년룬(나이테) 80여를 헤아리는 로목(老木). 그 로목에도 바람 잘 날이 별로 없는게 실정이니 이 아니 답답하랴.
당시는 한껏 잘한답시고 한 노릇이, 잘못도 이만저만한 잘못이 아니었음을 뒤늦게야 깨닫고, 후회와 자책감에 고뇌에 밤을 지새운 일들이 부지기수다.
10여년 전에 쓴 글들을 다시 찍어내는 이 마당에, 나의 마음은 어쩐지 내키지를 아니하고 자꾸 무겁기만 하다.
-지금 같으면 이렇게까지 어설프게는 쓰지를 않았을 텐데.
사회인이 된 뒤에, 어떡하다 서랍 밑에서 들추어낸 중학교때 필기장을, 웃음을 머금고 한번 펼쳐보는 것 같은 그런 가뿐한 심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까맣게 멀다.
오직 참괴무면(惭愧无面)-부끄러워 볼낯이 없다는 느낌만이 짙은 안개처럼 서려서 가셔주지를 않을 뿐이다.
--(김학철문집 제1권 <<태항산록>>머리말)
김학철전집4-태항산록(머리말)
항일 무장투쟁의 문학적 복원! 〈김학철 문학 전집〉 출시!
항일 무장투쟁의 문학적 복원! 〈김학철 문학 전집〉 출시!
총을 든 항일 투사에서 펜을 든 혁명 투사로
20세기 격정 시대를 살다 간 김학철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상을 집대성하다
남에서는 사회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북에서는 김일성 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남과 북에서 모두에게 외면을 당한 조선의용대(군). 그들은 일제강점기 말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다.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은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동지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조선의용군의 활동과 투쟁을 진실하게 그려낸다. 어떤 거짓과 과장 없이 그저 있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해 내고 생생하게 써 내려간다. 그것이 바로 역사와 진실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선 원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동안 원산총파업, 광주학생운동, 만보산 사건, 리재유 체포 등 굵직한 국내외 사건에 영향을 받아 독립투사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김학철. 일제에는 총으로, 독재에는 펜으로 끊임없이 저항하며 20세기 불의의 시대와 싸워 왔다. 김학철은 굽히지 않는 저항 정신과 혁명적 낙관주의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김학철의 작품은 1980년대부터 일부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절판된 상황이라 안타까움이 컸다. 보리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하는 〈김학철 문학 전집〉은 민족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김학철의 문학과 삶을 온전히 복원하고 소개하는 작업이다. 국내에 여러 판본으로 소개되었던 《격정시대》를 첫 출발로 김학철이 남과 북, 그리고 중국에서 쓴 글을 모두 모아 전체 12권으로 선보인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와 문학사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이자 영원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학철 문학 전집〉 12권 목록
1권 | 격정시대 상
2권 | 격정시대 하 (장편소설)
3권 | 최후의 분대장 (자서전)
∎ 나의 길 (수필)
∎ 범람 (중단편 소설)
∎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 (수필)
∎ 천당과 지옥 사이 (수필)
∎ 추리구의 겨울 (수필)
∎ 태항산록 (소설, 수필)
∎ 항전별곡 (전기문학)
∎ 해란강아 말하라 (장편소설)
∎ 20세기의 신화 (장편소설)
(* 전집 출간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 민족문학의 꽃 《격정시대》로 〈김학철 문학 전집〉을 열다!
김학철의 분신 ‘서선장’을 통해 복원한 항일투쟁의 기록
한반도와 중국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혁명역사소설
《격정시대》는 김학철의 자전적 소설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 큰 활약을 펼친 조선의용군의 항일투쟁 과정을 증언한 역사소설이다. 또 우리에게 잊힌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그들의 자리를 올곧게 자리매김하는 사실주의 문학이자 항일 무장투쟁의 공백을 메울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장편소설 《격정시대》의 주인공이자 원산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어부의 아들 ‘서선장’은 어린 시절 원산총파업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서울로 유학해 광주학생사건과 리재유 체포 사건 들을 겪으며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에 눈뜬다. 윤봉길 열사의 거사를 목도하자 항일투쟁에 뛰어들고자 결심하고 중국 상해로 홀연히 떠난다. 그곳에서 의열단을 만나고 조선의용군을 거치며 사회주의 혁명 전사로 성장한다.
김학철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조선의용군의 빛나는 항일투쟁을 문학으로 되살렸다. 원산과 서울, 그리고 중국 상해, 무한, 태항산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무대에서 활동했던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이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선 조선의용군이 총을 든 까닭, 왜 중국 땅을 밟았는지, 어떤 투쟁을 원했는지 등 생생한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격정시대》는 서선장, 양씨동, 한정희, 손쌍년, 송일엽, 마점산… 등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독립운동 과정을 문학으로 복원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넋을 기리는 진혼곡이자, 청춘을 조국에 바친 영령들에게 전하는 헌사이기도 하다.
❚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풀어놓는 묘사, 풍자와 해학의 미학
잊히거나 사라진, 그러나 지켜야 할 우리말의 보고
김학철은 남북에서 펴낸 국어사전을 두루 섭렵하고,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통째로 외우는 등 우리말이 생생히 살아 있는 다양한 책들을 평생을 통해 꾸준하게 읽고 갈무리하면서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창조했다. 그 시간들이 오롯이 녹아 있는 《격정시대》는 잊히고 사라져 간 우리말과 속담들의 보물창고이다. 지금은 흔히 쓰지 않지만 풍성한 우리말과 맛깔 나는 속담들이 책 곳곳에 펼쳐진다. 민중의 꿈과 삶의 슬기, 유머와 해학이 스며 있는 우리말과 묘사들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또 김학철은 구수한 입담으로 독립운동의 산 역사를 풀어놓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이루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투쟁 상황도 작가가 가진 풍자와 해학,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그려낸다. 소설 속 대사와 지문은 마치 판소리 사설을 풀어내는 듯 책을 읽는 독자들을 쥐락펴락한다. 찰진 비유와 대구, 우리 속담과 중국고사의 적절한 인용과 표현으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김학철 문학 전집〉은 작가 김학철이 남과 북, 중국에서 쓴 글을 모두 모아 집대성하는 만큼 작가가 쓴 우리말을 최대한 복원해, 독자들이 직접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 우리말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서가 흥건히 묻어나는 우리말의 발자국을 한 발 두 발 좇으며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의 바다에 흠뻑 빠져들기 바란다.
❚ 사진과 지도로 만나는 소설 속 배경과 인물들
조선의용대의 여러 활동과 인물이 담긴 사진을 책머리에 수록해 실화 소설의 맛을 극대화한다.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중앙육군군관학교 실제 풍경과 학생들의 수업 장면, 조선의용대가 펴낸 간행물, 일본군 포로가 된 김학철이 취조를 당했던 일본헌병사령부 옛 건물, 총 맞은 다리를 치료하지 못한 채 수감되었던 일본 나가사키형무소 사진 들을 실어, 소설 속 실제 배경과 인물들을 더욱 생생히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김학철이 의열단 테러리스트, 조선의용대원으로 활동한 항일 투쟁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혁명 여정 지도’를 첨부했다.
❚ 최후의 분대장으로 불리길 원했던 독립운동가이자
현대문학사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기념비적 작가, 김학철의 삶
김학철은 191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누룩 제조업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원산공립초등학교를 마쳤고 친척 도움으로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 원산총파업부터 광주학생운동, 윤봉길 의거 같은 사회 격변을 거치고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큰 영향을 받으며 항일투쟁 의식을 갖추었다. 열아홉 살 나이로 홀연히 중국 상해로 떠나 의열단에 가입해 테러 활동에 참가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했고 1937년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는 중국 국민당의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에 들어간 뒤로 교장 김두봉, 한빈, 윤세주의 진보 사상에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938년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 전신) 창립 대원으로 활약했으며 194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41년 조선의용대 분대장으로 일본군과 전투 중 태항산 호가장 지구에서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1942년 일본 나가사키형무소에 이송되어 10년 징역형을 받았다. 다친 다리는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해방 직전 절단해야만 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출옥하여 서울로 돌아와 조선독립동맹 위원으로 참여했고 <건설주보>에 단편소설 ‘지네’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좌익 탄압으로 1946년 월북해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50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로 《해란강아 말하라》들을 펴냈다. 1957년 반동분자로 숙청당해 24년 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모택동 체제 비판 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써 문화대혁명 때 10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1980년 64세에 이르러서야 중국 공산당 당적을 회복하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기 시작, 민족 문단에 한 획을 그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9월 25일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85세 나이로 중국 연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두만강에서 유해로 띄어져 평생을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고향 원산 앞바다를 향했다.
▮ 저자 소개
김학철(金學鐵) | 글
본명은 홍성걸(洪性杰). 1916년 조선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중국 상해로 탈출, 김원봉 휘하 의열단 반일 테러 활동에 가담,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항일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194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41년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나가사키형무소에서 4년 동안 복역했다.
옥중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하고 1945년 일본이 투항하여 출옥했다. 서울에서 조선독립동맹에 참여, 단편 〈지네〉(1945년)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그 뒤 평양에서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1 950년부터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소장 정령)에서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2001년 9월 25일 연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격정시대》(1986년), 《20세기의 신화》(1996년), 소설집 《무명소졸》(1989년), 《태항산록》(1989년),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1994년), 《나의 길》(1996년), 《우렁이 속 같은 세상》(2001년),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2002년), 전기문학 《항전별곡》(1983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1995년) 등 이 밖에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추천하는 말’
김학철 선생은 정통 사회주의자이고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사회주의라는 생각을 한 번도 버린 적 없다. 끝내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사람이다.
내가 이런 김학철 선생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1948년 <담뱃국>이라는 소설이었다. 김학철 선생은 사회주의자이지만 그가 쓴 소설에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 사람 사는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뒤 그 작품에 대해 서평을 쓴 인연으로 연변에서 김학철 선생을 여러 차례 만나게 되었다. 내가 본 김학철은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또 소설 쓰는 것을 매우 즐겨했다.
김학철 선생의 글은 한국 문학을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한국 문학의 한 갈래라고 본다. 그가 쓴 글들이 <김학철 문학 전집>으로 나온다니 참으로 기쁘다. 혁명적 낙관주의자 김학철 선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_신경림 시인
한국의 보리출판사에서 <김학철 문학 전집> 전 12권이 출판된다고 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김학철은 불요불굴의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가 평생 지향한 것은, 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습니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은 넉넉했던 팔로군 생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고, 사회주의가 되려면 인간적이어야만 하는 것이었지요.
2001년, 김학철의 유해는 태어난 고향인 원산에 닿도록 두만강에 띄워 보내졌습니다. 원산에 닿은 유해는 한국에 와서 <김학철 문학 전집>으로 태어났고,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김학철 선집>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나아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_오무라 마스오 와세다 대학 명예교수
김학철 선생이란 어른의 성함을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이다. 내가 국회에서 선배로 모신 송지영 선생이 “김학철이란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이고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공산주의자이시지. 그분은 한 번도 지조를 꺾지 않으셨고 올곧은 그대로 삶을 사셨다.”고 소개했다.
최후의 독립군 분대장 김학철 선생은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해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총격을 당해 다리를 다치고 일본군에 붙잡혔다. 일본에 협조했다면 치료라도 제대로 받았을 테지만, 그것도 거부하여 평생 다리 하나가 없는 불구가 된 채 일본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김학철 선생은 전 생애를 레지스탕스로 일관하셨다. 그분이 누리고 바라는 삶은 간단하다. 필수품으로 원고지와 펜, 그리고 간단한 옷가지, 누울 자리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를 찾아야 하나? 우리의 스승은 바로 김학철 선생인데!
이제라도 김학철 선생의 작품을 모아 전집을 낸다고 하니 매우 반갑다. 김학철 선생의 해학과 유머가 있는 여유로운 필체를 독자들도 함께 느끼길 바란다.
_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김학철이 없었다면 우리의 굴욕적인 식민지사의 한 부분은 어찌 되었을까. 그 굴욕이 한결 비참하고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우리의 독립투쟁사 말기에 ‘조선의용대(군)’라는 다섯 글자가 박혀 있다. 그런데 그 독립군이 어떻게 결성되고, 어디서, 어떻게 싸웠는지 실체적인 명확한 기록이 없었다. 그 역사 망실의 위기를 막아낸 사람이 바로 김학철이다.
김학철은 바로 조선의용군의 《최후의 분대장》으로 싸우다가 왼쪽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썩어 들어가다가, 일본의 나가사키형무소까지 끌려가 결국 절단당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외다리 인생’을 살아 내면서 총 대신 펜을 들고 문인의 삶을 개척했다. 그리고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결한 영혼 속에서 탄생한 진솔한 작품이 바로 《격정시대》이다. 그는 그 소설을 통해 작가의 진정한 소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작가는 민족사에 기여하고, 인류사를 보존해 가는 존재다.
이제 그분의 모든 작품들이 전집으로 묶여 우리 문학사에 크게 자리 잡으며 많은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기쁘고 보람스러운 일이다. 선생께서도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_조정래 소설가
▮ 본문 중에서
하권)
선장이가 재미가 있다는 바람에 혹해서 달라붙었다. 지식욕이 워낙 강한지라 두 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다시피 하고 파고들어 읽었다. 그리 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침대에 번듯이 나가 누워 천장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알고 보니 세상은 이런 거였구나!’
선장이는 자신이 여적 흐리멍텅한 혼돈세계에서 헤맨 것만 같았다. 저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제가 어데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 고 그저 맹탕 남의 정신으로 살아온 것만 같았다. _67쪽
함경도, 평안도로부터 경상도, 전라도에 이르기까지 조선 팔도의 사 투리가 다 들리는가 하면 추운 고장 북간도와 머나먼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온 치들도 있었다. 연령도 이십 전후에서 이십칠팔 세까지 다 같지 않았고 또 생김생김이나 차림차림이 다 다른 만큼 성질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선장이가 보는 바에 한 가지 공통점은 다들 긍지심 과 자부심이 대단히 강한 것이었다. 다들 ‘내’ 없으면 조선 독립은 바라지도 말라는 식의 과대망상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바꾸어 말하면 개개 다 개인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_121쪽
가지 와타루 씨 부부와의 첫 상봉은 무창 성안 장지동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정원 연못가 플라타너스의 그늘에서 있었다. 가지 부인의 이름은 이케다 사치코라고 하는데 내외가 다 인물이 조촐할 뿐 아니라 옷차림까지 말쑥들 하였다. 가지 씨는 도쿄제국대학 졸업생으로 총정치부 제3청의 풍내초와 동기동창인데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작가였으므로 당국의 박해를 받아 내외 함께 중국으로 망명을 한 것이었다. 그들 내외와의 상봉은 선장이에게 매우 의의 있는 실물교육으로 되었다. 참전 이래 선장이는 왜놈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악귀, 살인귀로만 보여 이를 갈아 왔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두 일본의 지성인은 본국 정부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다가 그 박해에 못 이겨 우리 편으로 넘어오지 않았는가!
‘이런 일본 사람두 있었구나!’
선장이는 시야가 갑자기 넓어진 것 같았다. _227쪽
1938년 10월 10일에 조선의용대가 정식으로 발족하였는데 대장은 중외에 위명을 떨친 김청산이고, 제1지대 지대장은 내전에 참전하지 않으려고 연대장의 자리를 내놓고 중앙군교 광동분교에 전술 교관으 로 갔던 방효삼이고, 그리고 제2지대 지대장은 중앙군교에서 선장이 들의 소대장을 담임하였던 리익선이었다. 제1지대의 정치위원은 왕 통이고 제2지대의 정치위원은 김학무인데 이 두 사람은 다 선장이의 군교 때 동기동창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식견은 선장이 또래보다 까맣 게 높은 사람들이었다. _241쪽
의용대는 정치 공세의 한 부분으로 ‘일본군 병사들에게 고함’, ‘조선 동포들에게 고함’ 따위의 일본글과 조선글로 된 삐라를 대량적으로 찍 어 내었다. 그런 연후에 그것들을 지하 연락망을 통하여 적 점령 구역 에 갖다 살포를 하였다. 그런데 이때 근거지 안에는 인쇄 설비라는 게 마련이 없어 다들 부득이 원시적인 석판인쇄에 매달려야 하였다. 비록 인쇄는 그렇게 어설퍼도 그것이 거두는 효과는 매우 신통하였다. 많 은 조선 청년들과 학도병들이 그 원시적인 방법으로 찍어 낸 삐라에끌리어 죽음을 무릅쓰고 항일 부대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한 삐라들을 기초하는 일은 김학무가 총적인 책임을 졌는데 그것은 그가 지대의 정치위원이었을 뿐 아니라 일어, 영어, 한어에도 다 능통하였기 때문이다. _407~408쪽
항일 무장투쟁의 문학적 복원! 〈김학철 문학 전집〉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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