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철학의 욕망의 윤리에 대하여
마상룡 (탈근대철학연구회 공동대표)
욕망의 주체는 누구인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네 욕망을 포기하자 말라”는 라캉의 금언에 따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보다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삶을 바람직한 삶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삶이 어째서 더 가치가 있고 윤리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왜 그것을 단순한 개인의 가치나 신념이라 하지 않고 윤리라 할 수 있는가? 타인의 윤리 의식을 추종하는 것보다, 즉 기존의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관습적 윤리를 따르는 것보다 개인의 주체성에서 비롯된 윤리 의식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어째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욱 윤리적인가?
지젝이 자신이 욕망하는 윤리원칙을 무조건 준수하고자 하는 칸트의 정언명령의 윤리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강조하는 공리주의적 도덕보다 더욱더 윤리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정한 보편 타당한 행위 원칙을 언제 어디서나 관철하려는 정언명령의 윤리는 개인으로 하여금 무조건적이고 외상적인 윤리와 직면하고 자신의 주체성을 윤리적으로 정립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정립한 개인은 타자의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보편성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추구함으로 인해 기존에 타성적으로 이어져 왔던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관습적인 도덕에서조차도 탈피하게 된다. 왜냐하면 보편적 원리에 의거한 윤리 의식을 정립한 주체는 관습적인 도덕을 추구하는 것 역시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형성된 도덕관을 쫓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관을 따를 때 기존 체계의 이익에 복무하는 도덕적 가치의 문제점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회적 타자의 관습을 윤리로 추종하는 것은 개별자의 존재성과 직결된 윤리가 아니므로 윤리적 책임조차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개별자의 욕망과 주체성에서 비롯된 윤리는 자기 책임을 포기할 수가 없다. 행위자의 행위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체의 결단에 의해 형성된 윤리는 사회에서 부도덕성을 잉태할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이는 타자의 이익과 쾌락을 끝없이 추구함으로써 욕망과 욕망의 사슬이 한없이 이어지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사회적 경쟁과 투쟁을 벌이는 욕망 충족 방식과, 이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독점과 배제를 원리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기의 욕망을 충족하는 주체와 달리, 타자의 욕망을 추구하는 개별자는 욕망 충족의 기준 역시 타자에게 있으므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쟁과 투쟁이 치열해질수록 내적 공허감은 지속되거나 증대된다. 또한, 이럴수록 더욱 더 타자의 욕망 추구에 종속되고 결국에는 타인의 욕망을 파괴하거나 예속시키는 적대적 경쟁은 심화시키면서 자신의 내적 결핍이 채워질 수 없는 방식으로 욕망 충족을 추구하게 된다.
사회를 지탱하는 욕망의 황금률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주체 바깥의 사회적 가치와 척도에 의해 외적으로 충족하는 방식은, 결국 외적인 경쟁과 타인의 존재를 파괴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개인들의 내적 욕망은 충족할 수 없는 방식으로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개별자의 내적 결핍으로부터 창조된 주체성으로부터 추구되는 욕망은 내적 결핍을 심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진정한 내적 실존적 소망을 본질적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는 개인의 근원적 존재성과 맞닿은 욕망의 충족 방식으로 욕망 충족이 곧 개인의 근원적인 생명력과 존재성을 고양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인은 내적 충일감과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 자유로운 충만감을 얻게 된 개인은 타자의 존재성을 파괴함으로써 개인의 존재성을 증명하고, 타자의 욕망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필요성 자체를 없애므로, 사회 전체의 윤리 도덕성으로까지 확장되게 된다. 그런데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추구하게 되면 인간은 타자를 빌미로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뿐만 아니라 집단적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전쟁이나 학살, 생존권 박탈이나 인권 침해, 생태계 파괴 등의 방식으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 생태의 존재자들과 같은 수많은 타자를 희생시키거나, 주체 자기 자신이 그것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타자의 욕망 추구 속에서는 애국주의, 민족주의, 성이나 종교, 계급이나 계층 이익 등 이타적인 집단 행동을 빌미로 극단적인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나르시시즘의 함정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타자의 선택에 끌려서 이루어진 행동의 결과는 자기의 진정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게 되므로, 그에 대한 자기 책임감을 덜 느끼거나 방기하게 된다. 하지만 자기 욕망을 욕망하게 되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의 근거가 개인적인 자기 욕망과 소망이므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힘이 커진다. 또한,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과오와 문제점을 시정하는 방식으로 좀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하여 실천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주체의 선택과 행동의 근거가 자기 욕망이므로, 전쟁이나 일상적인 인권 침해 등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을 만한 근거가 애초에 희박하게 된다. 따라서 보편적 원리와 분투하면서 정립되어가는 자기 욕망을 욕망하는 윤리가 일반화되면, 남의 처지를 나의 처지로 바꾸어 생각하게 되고, 자기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사랑을 주게 되는 황금률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각자의 욕망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게 되는 사회가 점차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슬라보예 지젝은 “네 욕망을 타협하지 말라”는 라캉의 금언과 함께, 타자의 욕망이 아닌 자기 욕망을, 즉 자기 쾌락이나 자기 이익을 넘어서는 진정한 자기 소망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 소개마상룡 (탈근대철학연구회 공동대표)
마상룡은 인문학자로서 인문협동조합 이문회우 아카데미에서 지젝 철학, 들뢰즈 철학 등을 강의하면서 인문학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인문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대학에서는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경대·한세대 강사로 활동 중이다. 논문으로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인격 발달과 그 교육적 함의」(인격교육학회), 『지젝 주체이론의 교육적 의미』(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등이 있고, 저서로는 『고금(古今)-그리고 고전(古典)은 미래다』, 『하룻밤에 읽는 과학명저 다섯』 등이 있다.
지젝 철학의 욕망의 윤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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