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왜 영양곡물에 관심을 가질까?
올해는 유엔이 정한 '국제 밀렛(millet)의 해'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농업계(農業系)에서조차 주목(注目)하지 않은 채 한 해가 지났다. 밀렛은 조, 수수, 기장 등 벼과에 속하는 기장족(Paniceae) 식물 중 식용으로 재배(栽培)하는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잡곡(雜穀)으로 통칭하고 있을 뿐 별도로 구분(區分)하는 이름이 없다. 세계적으로 밀렛은 주요 곡물인 벼, 밀, 옥수수에 비해 영양성분(營養成分)이 풍부한 '슈퍼푸드'로 재인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온건조(高溫乾燥)한 기후에 잘 적응해 자라기 때문에 온난화(溫暖化)에 따라 확산하고 있는 고온과 가뭄에 대응(對應)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작물(食糧作物)로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쌀 이외의 곡물(穀物)을 잡곡이라 부르는 데에는 중요하지 않거나 하찮다는 의미(意味)가 담겨 있어 얼마 전 국립식량과학원(國立食糧科學院)에서 그 명칭에 대한 의견을 모아 본 적이 있다. 그중 '영양곡(營養穀)'이라는 이름이 맘에 들었다. 밀렛은 싹이 되는 배아(胚芽)와 중요 양분을 저장하는 호분층(胡粉層)의 비율이 높아 단백질(蛋白質)을 포함한 주요 영양성분(營養成分)과 비타민류, 기능성 물질들이 벼, 밀에 비해 훨씬 풍부하다. 밀가루에 많은 글루텐도 매우 적어 셀리악병이나 소화장애(消化障礙)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조와 기장은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중국 요녕 지역(遼寧地域)에서 한반도(韓半島)로 전래(傳來)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발간한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조가 오곡 중 가장 많이 난다는 내용이 있고, 재배 기술(栽培技術)도 많은 고농서(古農書)에 기록하고 있다. 과거에는 쌀 못지않은, 어쩌면 쌀보다 더 중요한 백성들의 먹거리였다는 증거다. 고려시대(高麗時代)부터 국가와 백성의 안위(安危)를 위해 왕실이 예를 갖춰 지켜야 했던 '종묘사직(宗廟社稷)'에서 '직(稷)'이라는 한자는 기장을 뜻한다. 조선 건국 당시부터 땅과 곡식(穀食)의 신에게 예를 올리던 '사직단(社稷壇)'은 지금도 경복궁(景福宮)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올여름 우리나라는 기록적인 폭우로 큰 재난(災難)을 겪었다. 반면 태국(泰國)과 인도(印度) 등 동남아 국가(東南亞國家)들과 북미와 남미의 곡창지대(穀倉地帶),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는 고온(高溫)과 가뭄 피해가 극심했다.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로 국지성 폭우 피해도 크지만, 고온과 가뭄으로 인해 고통(苦痛)받은 나라가 훨씬 많고 심각하다. 우리나라도 여름철 집중호우(集中豪雨) 피해 못지않게 겨울과 봄철 가뭄도 매년 심각해지고 있다.
탄수화물(炭水化物) 이외의 영양분을 탄소배출량(炭素排出量)이 많은 동물성 식품(動物性食品)에 의존하면 할수록 기후변화(氣候變化) 속도는 더 빨라지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食糧危機)를 걱정하는 유엔이 밀렛에 주목하고 관심을 촉구(促求)하는 가장 큰 이유다. |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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